한용희선생님을 찾아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3-10-20 00:13본문
(원로를 찾아)
한용희 선생님 전화 인터뷰
푸르른 5월, 스승의 날 즈음에 찾아 뵈려고 했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극구 밖에서 만나는 것을 사양하셔서 전화인터뷰로 대신 하였습니다.
조원경: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요?
한용희: 나는 잘지내고 있어요. 협회분들 두루 안녕하시지요?
내가 종합병원이라 일주일에 세 번은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웃음~)
조: 여러번 데이트 신청을 드렸는데 하도 찾아 뵙는것을 불편해 하셔서 전화 인터뷰를
드리고자 전화드렸어요.
피곤하시지 않게 몇가지 질문만 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시겠지요?
한: 일선을 떠난 사람인데 말할게 뭐 있겠어요?
조: 저희 협회 고문으로 계시고 아직 건재하신데 무슨 말씀이세요.
동요계의 대선배님이시고 협회의 최고 어른이신 선생님의 동요이야기를
동요문화뉴스 여름호 특집기사로 실으려고 하니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생님의 동요중에 가장 아끼시는 곡이 무엇인지요?
한: 가장 많이 불려지는 <파란마음 하얀 마음>이지요. 1957년에 만들었어요.
조: 그 곡을 만드시게 된 동기가 있을까요?
한: <파란마음 하얀마음> 작사자인 어효선씨가 처음엔 가사를 주로 어둡게 썼지요.
그런데 작사계의 강소천씨가 동요는 밝고 생동감이 있어야한다고 충고를 해주어
그 다음부터 밝은 노랫말을 만들었어요.
그 당시 기독교에서 발행하는 유일한 어린이 잡지였던 '새벗'의 편집장으로 있던 강소천 씨의 조언에 따라 어효선씨가 새롭게 만든 동시가 <파란마음 하얀마음>이었어요.
그것을 강소천씨가 '세벗' 어린이 잡지에 권두시로 실었고 그걸 보고 내가 곡을 만들게 되었지요. 나는 그 당시에 KBS 어린이 프로그램 PD로 있었는데 그 곡을 KBS어린이 합 창단을 통해 발표를 하였고 의욕적이고 작품열이 높았던 시기라 나는 그 해에 작곡집도 펴내었어요. 결혼도 그 때 했고...(웃음~)
조: 그때 선생님 연세가 20대셨나요?
한: 그렇죠. 1954년에 내가 KBS에 입사를 했고 내가 1931년생이니까 20대였지요.
<파란마음 하얀마음>을 발표했던 1957년에는 전쟁직후라 새로운 동요로 활기있게 해 주는 동요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작곡을 적극적으로 많이 하여 밝은노래 고운노래 부르기 캠페인을 펼쳤어요. 내가 PD로 있으니까 KBS동요 100곡집을 만들어 발표하면서 작곡도 하고 어린이합창단 지도도 하고 그러면서 동요인생이 시작된 거지요.
그 100곡은 여러작곡자들 곡이 함께 수록이 되어있는데 그 안에 내가 작곡한 '꼬마 눈 사람' , 고향땅', '우리 유치원' 등등 많은 곡이 있었어요.
조: PD로 계시면서 무슨 프로그램을 하셨나요?
한: 어린이 프로그램이지요. 그때는 라디오만 있었던 때였고 나는 프로그램 세 개를 했어요. '누가 누가 잘하나' , 'KBS동요' , '무엇일까요?' 등이지요. 매일 45분씩 방송했어요.
조: '무엇일까요?'는 무슨 프로그램이예요?
한: 알아맞히기 프로그램이었어요.
조: 아~ 퀴즈 프로그램이었군요.(웃음~)
동요를 하시면서 가장 보람되고 즐거우셨던 기억은 어떤것이 있으실까요?
한: 내가 만든 노래가 여기저기 불려지고 어린이들의 애창곡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 가장 보람되지요. '우리 유치원'을 유치원에서 원가로 많이 불리워지잖아요~
그것도 1957년에 만들었어요.
조: 방송국 PD생활은 몇 년 동안이나 하셨어요?
한: 1954년부터 1970년까지 한 15년 했어요.
조: 요즘 동요의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한: 최근 한 20년 동안에는 실험적인 동요가 계속 만들어 지는것 같아요. 새것을 추구하는 것은 좋으나 옛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요즘에 특히 어른흉내를 내는 동요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어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어요.
조: 앞으로 동요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세요.
한: 어린이들의 동요는 순수하고, 정답고, 어린이다워야 하는데 어른들의 음악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의욕적인 것은 좋으나 동요가 실험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 고 옛 동요를 난도질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조: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한: 열심히 하시고 아이들 정서에 맞게 작사, 작곡을 하고 아름답게, 동요답게 정신을 이어 나갔으면 좋겠어요. 또 좋은 지도자가 흥미롭게, 생각있게 지도하시면 되겠어요.
조: 오늘 힘드신데도 이렇게 후배들을 위해 좋은 말씀 해주셔 정말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한용희 선생님 전화 인터뷰
푸르른 5월, 스승의 날 즈음에 찾아 뵈려고 했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극구 밖에서 만나는 것을 사양하셔서 전화인터뷰로 대신 하였습니다.
조원경: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요?
한용희: 나는 잘지내고 있어요. 협회분들 두루 안녕하시지요?
내가 종합병원이라 일주일에 세 번은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웃음~)
조: 여러번 데이트 신청을 드렸는데 하도 찾아 뵙는것을 불편해 하셔서 전화 인터뷰를
드리고자 전화드렸어요.
피곤하시지 않게 몇가지 질문만 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시겠지요?
한: 일선을 떠난 사람인데 말할게 뭐 있겠어요?
조: 저희 협회 고문으로 계시고 아직 건재하신데 무슨 말씀이세요.
동요계의 대선배님이시고 협회의 최고 어른이신 선생님의 동요이야기를
동요문화뉴스 여름호 특집기사로 실으려고 하니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생님의 동요중에 가장 아끼시는 곡이 무엇인지요?
한: 가장 많이 불려지는 <파란마음 하얀 마음>이지요. 1957년에 만들었어요.
조: 그 곡을 만드시게 된 동기가 있을까요?
한: <파란마음 하얀마음> 작사자인 어효선씨가 처음엔 가사를 주로 어둡게 썼지요.
그런데 작사계의 강소천씨가 동요는 밝고 생동감이 있어야한다고 충고를 해주어
그 다음부터 밝은 노랫말을 만들었어요.
그 당시 기독교에서 발행하는 유일한 어린이 잡지였던 '새벗'의 편집장으로 있던 강소천 씨의 조언에 따라 어효선씨가 새롭게 만든 동시가 <파란마음 하얀마음>이었어요.
그것을 강소천씨가 '세벗' 어린이 잡지에 권두시로 실었고 그걸 보고 내가 곡을 만들게 되었지요. 나는 그 당시에 KBS 어린이 프로그램 PD로 있었는데 그 곡을 KBS어린이 합 창단을 통해 발표를 하였고 의욕적이고 작품열이 높았던 시기라 나는 그 해에 작곡집도 펴내었어요. 결혼도 그 때 했고...(웃음~)
조: 그때 선생님 연세가 20대셨나요?
한: 그렇죠. 1954년에 내가 KBS에 입사를 했고 내가 1931년생이니까 20대였지요.
<파란마음 하얀마음>을 발표했던 1957년에는 전쟁직후라 새로운 동요로 활기있게 해 주는 동요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작곡을 적극적으로 많이 하여 밝은노래 고운노래 부르기 캠페인을 펼쳤어요. 내가 PD로 있으니까 KBS동요 100곡집을 만들어 발표하면서 작곡도 하고 어린이합창단 지도도 하고 그러면서 동요인생이 시작된 거지요.
그 100곡은 여러작곡자들 곡이 함께 수록이 되어있는데 그 안에 내가 작곡한 '꼬마 눈 사람' , 고향땅', '우리 유치원' 등등 많은 곡이 있었어요.
조: PD로 계시면서 무슨 프로그램을 하셨나요?
한: 어린이 프로그램이지요. 그때는 라디오만 있었던 때였고 나는 프로그램 세 개를 했어요. '누가 누가 잘하나' , 'KBS동요' , '무엇일까요?' 등이지요. 매일 45분씩 방송했어요.
조: '무엇일까요?'는 무슨 프로그램이예요?
한: 알아맞히기 프로그램이었어요.
조: 아~ 퀴즈 프로그램이었군요.(웃음~)
동요를 하시면서 가장 보람되고 즐거우셨던 기억은 어떤것이 있으실까요?
한: 내가 만든 노래가 여기저기 불려지고 어린이들의 애창곡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 가장 보람되지요. '우리 유치원'을 유치원에서 원가로 많이 불리워지잖아요~
그것도 1957년에 만들었어요.
조: 방송국 PD생활은 몇 년 동안이나 하셨어요?
한: 1954년부터 1970년까지 한 15년 했어요.
조: 요즘 동요의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한: 최근 한 20년 동안에는 실험적인 동요가 계속 만들어 지는것 같아요. 새것을 추구하는 것은 좋으나 옛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요즘에 특히 어른흉내를 내는 동요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어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어요.
조: 앞으로 동요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세요.
한: 어린이들의 동요는 순수하고, 정답고, 어린이다워야 하는데 어른들의 음악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의욕적인 것은 좋으나 동요가 실험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 고 옛 동요를 난도질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조: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한: 열심히 하시고 아이들 정서에 맞게 작사, 작곡을 하고 아름답게, 동요답게 정신을 이어 나갔으면 좋겠어요. 또 좋은 지도자가 흥미롭게, 생각있게 지도하시면 되겠어요.
조: 오늘 힘드신데도 이렇게 후배들을 위해 좋은 말씀 해주셔 정말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