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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의 역사

윤극영과 <반달> 이야기(PDF 파일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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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5-06-1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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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극영과 <반달> 이야기

                  2024년 100살 된 <반달> <설날>, <고드름>, <따오기> …
         
 윤극영은 어린이 운동가 방정환이 결성한 색동회 창립 멤버이다. 조선 가사를 붙인 찬송 가곡이나 일본 동요 말고는 딱히 어린이가 부를 노래가 없던 시절에 본격적으로 동요 창작을 시작한 선구자이다. <반달>을 작곡한 1924년 어린이 합창단 ‘따리아회’를 조직하고 동요를 통한 어린이 문화운동에 뛰어들었다.

  (1926년 발행된 한국 첫 창작 동요집 《반달》 표지(왼쪽). 윤극영이 작곡한 동요 10곡이 실린 동요집으로, 여기에 동요 ‘반달’ 악보(오른쪽)도 수록되었다. /국립한글박물관)

 1926년 만주에 가서 음악 교사로 일했고, 이후 만주와 서울·일본을 오가며 활동했다. 일제 말 그의 행적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1970년대 다시 결성한 색동회를 중심으로 무궁화 보급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가 평생 지은 수많은 동요는 어린이이거나 한때 어린이였던 모든 국민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노래였습니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설날)라며 새해를 맞는 기쁨을 북돋웠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나’(고기잡이)라며 세상에는 슬픈 동요만 있는 것이 아님을 일깨웠다. 고드름(유지영 작사), 따오기(한정동 작사), 기찻길 옆, 어린이날 노래, 나란히 나란히(이상 윤석중 작사) 역시 그가 작곡한 주옥같은 동요이다.
 ‘반달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지닌 동요 작곡가 윤극영은 대표곡 <반달>을 비롯해 동요 600여 곡을 남겼다.

윤극영 작곡가가 1988년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서울 강북구 가옥. 현재는 서울시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반달’은 중국에서 1950년대 조선족 가수가 번역해 불렸는데, 나중엔 ‘소백선(小白船·하얀 쪽배)’이란 제목으로 중국의 음악 교과서에까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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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동요 100년사 윤극영 소개
 * 조선일보 2024년 1월 4일자 ‘신문은 선생님’ 기사 참고*
      ‘푸른 하늘 은하수~’ 첫 창작 동요 100살 됐어요 윤극영과 ‘반달’
                                  - 조선 유석재 장근욱 2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