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60년과 함께한 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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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8-07-18 17:21본문
* 대한민국 60년과 함께한 동요
요즘엔 동요에 대한 관심이 옛날 같지 않다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 동요가 아니더라도 재미있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얼마든지 있고, 놀거리 또한 수없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동요가 사라질 수도 있을까? 그건 절대 그렇지 않다. 세상에서 어린이가 사라지지 않는 한 동요 또한 사라질 수 없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름답고 순수한 동심이 살아있는 한 동요 또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동요는 동심을 담고 있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동요가 또다시 보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스며들어 동심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동요인들은 효과적인 방안을 찾아야 하겠다.
나이든 사람일수록 동요에 대한 추억과 감상을 지니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동요를 많이 불렀고, 그 시절의 동요들은 지금과는 달리 나름대로 사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요작곡가이면서 여러 권의 동요역사책을 펴낸 한용희 선생은 ‘겨레와 함께 숨쉬면서 겨레의 애환을 노래한 우리의 동요’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동요는 오래전부터 전해졌지만(전래동요)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동요라고 하는 것은 1924년부터 발표된 ‘창작동요’를 일컫는다. 윤극영의 <설날> <고드름> <반달> 등이 같은 해에 창작동요로 처음 발표되었다. 일제 식민지시대의 압박 속에서 탄생한 우리 동요는 해방과 건국,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겨레의 애환을 담은 노래가 된 것이다.
1920년대 ‘개척시대’를 지나 30년대에 여러 창작인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많은 애창동요가 발표되어 ‘황금시대’를 거친 동요는 일제말기 ‘암흑시대’를 지나 나라를 되찾고 새 나라를 세우면서 1950년대에 ‘전성시대’를 누리게 된다.
1930년대 황금시대를 수놓은 창작인들은 윤극영을 비롯하여 박태준, 윤석중, 한정동, 서덕출, 이원수, 윤복진, 홍난파, 정순철, 김영일, 목일신, 강소천, 박목월, 김성태, 김성도, 권태호, 이일래, 박태현, 김대현 등이 있으며, 1945년 해방 직후에 활동을 시작한 창작인들은 안병원, 권길상, 손대업, 한인현, 박재훈, 장수철(작곡), 정세문, 원치호 등이 있다.
1950년대는 동요의 전성시대라고 할 만큼 동요가 많이 발표된 시기이다. 특히 1950년대 중반 서울중앙방송(HLKA-지금의 KBS)의 방송동요로 발표된 것들 중에는 지금까지 애창되는 노래들이 꽤 많으며, 그 시절에는 어효선, 한용희, 윤용하, 박경종, 장수철(작사), 박홍근, 홍은순, 나운영, 김요섭, 박화목, 이계석, 박흥수, 이은렬, 금수현, 김공선 등이 활약했다.
1960~70년대는 한국동요작곡연구회(회장 손대업) 등을 중심으로 초등학교 교사들의 창작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는 때였으며, KBS어린이합창단의 활동과 더불어 선명회어린이합창단, 리틀엔젤스예술단,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 등이 새로 생겨 동요를 합창으로 연주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초등학교의 합창단이 속속 생겨난 것도 이 시기이다. 유병무, 김규환, 이수인, 윤해중 등이 합창을 통해 많은 동요를 발표하였으며, 홍은순, 유경손, 정근, 김숙경, 황철익, 김방옥, 김성균 등은 유치원 노래 창작에 힘썼다.
1968년에 모임을 시작한 한국동요동인회(지금은 한국동요작사작곡가협회)의 창작활동도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에는 KBS 외에 MBC 문화방송과 DBS 동아방송, TBC 동양방송 등이 잇따라 개국하면서 점차 대중음악과 CM송 등의 상업음악이 방송의 주류를 이루게 되어 동요가 크게 위축받게 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80년대 이후의 동요는 그 전과는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 바로 방송사 주최의 창작동요 경연대회 개최에서 비롯된 것이다. 1983년 <MBC 창작동요제>를 시작으로 <KBS 창작동요대회>(1989), <EBS 고운노래발표회>(1998) 등이 이어졌으며, 지방자치단체와 지역방송사들도 참여하여 <대전일보ㆍTJB 전국창작동요제>(1990), <마산MBC 고향의봄 창작동요제>(1999), <성남시 전국창작동요제>(2000), <울산MBC 서덕출 창작동요제>(2006), <용인시 전국창작동요제>(2007), <금산사랑 전국창작동요대회>(2007) 등도 열리고 있다. 국립국악원이 주최하는 <국악동요제>(1987)와 서울YMCA가 주최하는 <초록동요제>도 1987년에 시작되어 한동안은 <가족창작동요경연대회>로 열렸다.
이같은 창작동요 경연대회는 날로 새로운 형식과 소재 등으로 이전과는 크게 다른 모습의 동요들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1980년대 이후에는 한국동요작사작곡가협회, 한국동요음악협회, 파랑새창작동요회, 동요사랑회, 우리동요사랑회 등의 모임에서도 해마다 새로운 작품들을 모아서 악보와 음반으로 펴내고 있어 매해 300곡 이상의 새 동요가 발표되고 있으니 ‘창작동요 제2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노래들이 그냥 묻혀버리지 않도록 널리 보급하는 일이 절실한 때이다. (김정철, 참고문헌-한용희 지음 창작동요 80년)
- 이 글은 "동요문화news" 2008년 여름호에 실은 내용입니다.
- 사진은 지난 2004년에 <창작동요 80년사>를 펴낸 한용희 선생의 모습입니다.
요즘엔 동요에 대한 관심이 옛날 같지 않다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 동요가 아니더라도 재미있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얼마든지 있고, 놀거리 또한 수없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동요가 사라질 수도 있을까? 그건 절대 그렇지 않다. 세상에서 어린이가 사라지지 않는 한 동요 또한 사라질 수 없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름답고 순수한 동심이 살아있는 한 동요 또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동요는 동심을 담고 있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동요가 또다시 보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스며들어 동심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동요인들은 효과적인 방안을 찾아야 하겠다.
나이든 사람일수록 동요에 대한 추억과 감상을 지니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동요를 많이 불렀고, 그 시절의 동요들은 지금과는 달리 나름대로 사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요작곡가이면서 여러 권의 동요역사책을 펴낸 한용희 선생은 ‘겨레와 함께 숨쉬면서 겨레의 애환을 노래한 우리의 동요’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동요는 오래전부터 전해졌지만(전래동요)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동요라고 하는 것은 1924년부터 발표된 ‘창작동요’를 일컫는다. 윤극영의 <설날> <고드름> <반달> 등이 같은 해에 창작동요로 처음 발표되었다. 일제 식민지시대의 압박 속에서 탄생한 우리 동요는 해방과 건국,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겨레의 애환을 담은 노래가 된 것이다.
1920년대 ‘개척시대’를 지나 30년대에 여러 창작인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많은 애창동요가 발표되어 ‘황금시대’를 거친 동요는 일제말기 ‘암흑시대’를 지나 나라를 되찾고 새 나라를 세우면서 1950년대에 ‘전성시대’를 누리게 된다.
1930년대 황금시대를 수놓은 창작인들은 윤극영을 비롯하여 박태준, 윤석중, 한정동, 서덕출, 이원수, 윤복진, 홍난파, 정순철, 김영일, 목일신, 강소천, 박목월, 김성태, 김성도, 권태호, 이일래, 박태현, 김대현 등이 있으며, 1945년 해방 직후에 활동을 시작한 창작인들은 안병원, 권길상, 손대업, 한인현, 박재훈, 장수철(작곡), 정세문, 원치호 등이 있다.
1950년대는 동요의 전성시대라고 할 만큼 동요가 많이 발표된 시기이다. 특히 1950년대 중반 서울중앙방송(HLKA-지금의 KBS)의 방송동요로 발표된 것들 중에는 지금까지 애창되는 노래들이 꽤 많으며, 그 시절에는 어효선, 한용희, 윤용하, 박경종, 장수철(작사), 박홍근, 홍은순, 나운영, 김요섭, 박화목, 이계석, 박흥수, 이은렬, 금수현, 김공선 등이 활약했다.
1960~70년대는 한국동요작곡연구회(회장 손대업) 등을 중심으로 초등학교 교사들의 창작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는 때였으며, KBS어린이합창단의 활동과 더불어 선명회어린이합창단, 리틀엔젤스예술단,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 등이 새로 생겨 동요를 합창으로 연주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초등학교의 합창단이 속속 생겨난 것도 이 시기이다. 유병무, 김규환, 이수인, 윤해중 등이 합창을 통해 많은 동요를 발표하였으며, 홍은순, 유경손, 정근, 김숙경, 황철익, 김방옥, 김성균 등은 유치원 노래 창작에 힘썼다.
1968년에 모임을 시작한 한국동요동인회(지금은 한국동요작사작곡가협회)의 창작활동도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에는 KBS 외에 MBC 문화방송과 DBS 동아방송, TBC 동양방송 등이 잇따라 개국하면서 점차 대중음악과 CM송 등의 상업음악이 방송의 주류를 이루게 되어 동요가 크게 위축받게 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80년대 이후의 동요는 그 전과는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 바로 방송사 주최의 창작동요 경연대회 개최에서 비롯된 것이다. 1983년 <MBC 창작동요제>를 시작으로 <KBS 창작동요대회>(1989), <EBS 고운노래발표회>(1998) 등이 이어졌으며, 지방자치단체와 지역방송사들도 참여하여 <대전일보ㆍTJB 전국창작동요제>(1990), <마산MBC 고향의봄 창작동요제>(1999), <성남시 전국창작동요제>(2000), <울산MBC 서덕출 창작동요제>(2006), <용인시 전국창작동요제>(2007), <금산사랑 전국창작동요대회>(2007) 등도 열리고 있다. 국립국악원이 주최하는 <국악동요제>(1987)와 서울YMCA가 주최하는 <초록동요제>도 1987년에 시작되어 한동안은 <가족창작동요경연대회>로 열렸다.
이같은 창작동요 경연대회는 날로 새로운 형식과 소재 등으로 이전과는 크게 다른 모습의 동요들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1980년대 이후에는 한국동요작사작곡가협회, 한국동요음악협회, 파랑새창작동요회, 동요사랑회, 우리동요사랑회 등의 모임에서도 해마다 새로운 작품들을 모아서 악보와 음반으로 펴내고 있어 매해 300곡 이상의 새 동요가 발표되고 있으니 ‘창작동요 제2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노래들이 그냥 묻혀버리지 않도록 널리 보급하는 일이 절실한 때이다. (김정철, 참고문헌-한용희 지음 창작동요 80년)
- 이 글은 "동요문화news" 2008년 여름호에 실은 내용입니다.
- 사진은 지난 2004년에 <창작동요 80년사>를 펴낸 한용희 선생의 모습입니다.

